미·중 반도체 관세전쟁 본격화…韓, ‘샌드위치’ 신세 탈출구는?
미·중 반도체 관세전쟁 본격화…韓, ‘샌드위치’ 신세 탈출구는?

2025년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간 반도체 관세 갈등이 기술 패권 경쟁 양상으로 격화되면서, 세계 주요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이 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내몰리며 경제 및 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고율 관세 부과 위협과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국 산업 보호와 기술 자립으로 맞서면서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과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 관세·규제 전방위 압박…글로벌 공급망 요동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은 단순 무역 분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미래 기술 주도권을 건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2월 수입 반도체에 최소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데 이어, 3월에는 추가 10%p 인상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1990년대 정보기술협정(ITA) 이후 사실상 무관세였던 반도체 교역 환경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한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고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이에 맞서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기조 아래 반도체 자급률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2019년), 첨단 장비 수출 통제(2020년) 등에 대응해 국유 펀드를 통한 보조금 지급, 기술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 등 규제를 통해 미국 엔비디아 AI 칩 사용을 제한하고 화웨이 등 자국산 제품 사용을 유도하는 등 맞불 작전을 펴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충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와 중국의 대응 조치로 기업들은 생산 및 조달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85% 이상이 반도체 등 중간재인 상황에서, 미·중 갈등 심화는 기존 가치사슬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관세 이슈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업계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며, 이는 결국 미·중 양대 블록 중심의 공급망 분절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격 변동성 역시 확대되고 있다. 2024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와 수요 둔화로 급락세를 보이며 한국 수출에도 영향을 미쳤다(2025년 2월 반도체 수출 전년비 감소 전환).
미·중 갈등은 IT 기기 소비 위축을 통한 수요 감소(가격 하락 요인)와 특정 품목(예: HBM)의 공급 제약을 통한 가격 상승 압력이라는 상반된 효과를 동시에 발생시키며 시장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
韓 반도체, 위기 속 기회 모색…‘양날의 검’

미·중 갈등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위기이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기피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대체 공급처로 부상할 가능성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2024년 106억 달러, 전체의 7.5%), 특히 AI 시대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한국 기업(삼성·하이닉스 점유율 70% 이상)의 독보적 지위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현지 투자(텍사스 파운드리, 인디애나 패키징 공장 등)는 관세 리스크를 회피하고 미국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홍콩 포함 50% 이상 비중)의 불확실성 증대가 가장 큰 위협이다. 중국 내 생산 위축이나 자국산 선호 정책 강화는 한국 기업의 직접적인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제재 동참 압박과 중국 시장 유지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어려움도 크다.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는 삼성전자 시안 공장,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의 첨단 장비 도입과 기술 업그레이드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HBM 등 핵심 제품의 대중 수출 금지 조치는 한국 기업의 잠재적 성장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미국 CHIPS법 보조금 수령에 따른 중국 내 투자 제한(가드레일 조항) 역시 부담이다.
글로벌 경쟁 심화도 악재다. 중국 업체는 저가 공세로 범용 메모리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미국은 자국 기업 육성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메모리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며 한국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2025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적자 기록). 향후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까지 관세를 부과할 경우,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시장 점유율 유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빨간불’…정부 대응 분주
반도체 산업의 부진은 한국 경제 전체에 심각한 파급 효과를 미친다. 전체 수출의 약 16%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둔화하면 무역수지 악화, 제조업 생산 및 설비투자 위축,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2025년 2월 반도체 수출 감소세 전환은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 장기화는 한국의 거시경제 안정성을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전략적 균형 외교와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칩4 등)에는 참여하면서도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갈등 관리에 힘쓰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K-반도체 전략'(510조원 투자 유치), ‘K-칩스법'(세액공제 확대) 등을 통해 국내 생산 기반 강화와 기술 초격차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차세대 AI 반도체 R&D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통상 분야에서도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관세 피해 최소화를 모색하고, 기업들의 해외 사업 애로 해소(미국 보조금 신청 지원, 중국 공장 운영 관련 특별 승인 요청 등)를 지원 중이다. 인도·동남아 등 신흥 시장과의 협력 강화를 통한 수출 다변화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전 대비…경쟁국 움직임 주시해야
미·중 반도체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구조적 갈등으로, 한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더욱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와 대중 압박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은 막대한 자본 투입을 통해 기술 자립 노선을 고수할 전망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대만과 일본 등 경쟁국들은 발 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대만은 TSMC를 앞세워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현지 투자 확대, 외교 채널 가동), 관세 예외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대중 수출 통제 동참) 자국 기업 보호(관세 피해 보험 지원)와 산업 부활(라피더스 프로젝트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보다 능동적인 통상 외교와 선제적인 기업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메모리 편중 현상을 완화하고 시스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중 갈등 심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과 경제에 전례 없는 위협이지만, 동시에 기술 혁신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다. 정부와 산업계가 긴밀히 협력하여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